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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의 대학생들] 대학, 다니자니 힘들고 그만둘 수도 없고…


[벼랑 끝의 대학생들] 대학, 다니자니 힘들고 그만둘 수도 없고…


서울 모 대학의 총학생회 학생들이 지난달 중순 개최한 등록금 인상 반대 집회에서 삼보일배 시위를 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벼랑 끝의 대학생들] [下] 대학, 선택 아닌 필수

고교 졸업하면 비정규직… "대학 안 나오면 인간 취급 못받지 않나"

국가 지원 예산 늘리고 생활비 장학금 확충해야


동국대 3학년생 김모(25)씨는 시간당 4000원을 받으며 학교 앞 식당에서 매일 오후 6시부터 밤 11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학기당 360만원인 등록금은 부모님이 감당하고 있지만, 6.6㎡(2평)짜리 고시텔 월세 50만원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에 묶여서 산다. 일을 마치면 녹초가 된다. 이런 생활이 3년째다. 김씨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학교에 수백만원이나 하는 등록금을 갖다 바쳐야 하는지 회의가 들 때도 있다. 그래도 졸업장을 포기할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안 나오면 인간 취급도 못 받지 않느냐"면서 "고향에서 고등학교만 졸업한 친구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산다. 2000원짜리 학교 식당 밥만 먹고 살지만 서울의 4년제 대학을 다니는 걸 포기할 순 없다"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인 한국외대 2학년 박모(23)씨는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지만 생활비 마련을 위해 번역 아르바이트와 일주일에 2개의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월 36만원짜리 고시텔에 살다가 지난 1월 3만원 싼 학교 인근 하숙집으로 옮겼다. "1만원짜리 하나에 벌벌 떨면서 생활하다 보면 울컥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버틴다"고 말했다. 지난해 9급 공무원에 합격한 이모(27)씨는 요즘 야간대학에 다닌다. 이씨는 "생활비를 아끼려 고시원에서 살고 있지만,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안 먹고, 안 쓰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산다"면서 "주변에서 고졸로는 살아가기 어렵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다"고 했다.

지방 모 대학 2학년 김모(22)씨는 방학 때 PC방과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80만~100만원을 쪼개 한 학기 생활비로 사용한다. 생머리를 길러 미용실 갈 돈을 아끼고 옷은 인터넷 쇼핑에서 9900원짜리를 산다. 일주일 생활비는 2만~3만원. 4000~5000원짜리 체인점 커피는 마실 엄두를 못 낸다. 김씨는 "통장 잔고에 600원이 남아 있었던 적도 있다"면서 "남들은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대학에 다니느냐'고 하겠지만, 대학 졸업장이 없는 인생은 생각해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 성공 신화를 일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러다 보니 실력이나 형편에 상관없이 대학 교육을 받겠다는 수요가 늘어나다 보니 대학교와 대학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80년 96개였던 4년제 대학(교육대·산업대 포함)이 지난해에는 222개로 늘었다. 41만2404명(1980년)이던 대학생 수는 지난해 255만5016명으로 6배 넘게 늘었다.

대학 등록금도 지난 10년 동안 가파르게 올라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 가구에서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한국사학진흥재단에 따르면 2001~2008년 사립대의 등록금 인상률은 5.1~6.7%에 달한다. 물가상승률의 2~3배에 달하는 인상률이다.

교육 예산 확충도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교육 예산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0.6% 선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1%)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반면 대학 등록금은 우리나라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장학금 제도 개편 등의 대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등록금만이 아니라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대 4학년 김모(27)씨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느라 아직 졸업을 못했다. 등록금은 고교 2학년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 보험금 등으로 해결하지만, 생활비는 김씨가 책임져야 했다. 김씨는 "외부 장학재단에 장학금을 알아봤지만 대부분 교수 추천서가 필요했다"면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수업에서 졸기만 하는 학생에게 적극적으로 추천서를 써줄 교수님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저소득층 대학생들이 등록금과 생활비 부담에 치이면서도 대학을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더 이상 학생 개인의 문제로 방치해선 안 된다. 정부나 대학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석호 기자 yoytu@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