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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나 칼럼] 내가 첼로를 하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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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부터 "만약 첼로를 하지 않았다면…"으로 시작하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아 왔다. 그럼 난 '심장 수술 전문의가 되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아슬아슬한 촉박함 속에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긴장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생사를 가르는 임무를 완성하는 모습이 아주 멋지게 와 닿았다.

나이가 들면서 음악과 무관한 의학이나 정치 같은 여러 분야에 재미를 느끼게 됐다. 하지만 어느 분야가 됐든 밖에서 볼 때나 그 분야가 쉽고 얕게 보일 뿐, 실지로 그 안에는 어마어마한 세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오히려 거꾸로 내가 첼로를 하지 않았다면 이러이러한 것들은 아마도 내 인생의 일부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고백하는 편이 더 솔직할 것 같다.

내가 첼로를 하지 않았다면, 음악 속에 무궁무진한 깊이가 정말 존재하는지 몰랐을 테고,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혼자 연습하는 가운데 발견하는 새로운 깨달음에 신이 나서 소리 없이 실실 웃는 내 모습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와는 같은 시대에 살지도 않고 개인적으로 아무 상관도 없는 다른 사람의 작품을 연구하면서 그 사람의 속뜻을 알고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든 소리의 높이와 길이와 크기가 이미 결정되어 있는 철저한 구조를 완벽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동시에 그런 빈틈없는 짜임새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자유도 몰랐을 것이다.
내가 첼로를 하지 않았다면, 퍼즐이 착착 맞듯이 같이 연주할 때 마음이 잘 맞는 음악가와 느낄 수 있는 정신적인 교감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내 손가락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의식하지 못했을 테고 그 손가락이 만드는 소리를 만끽하는 즐거움도 없었을 것이다. 마치 벼랑 끝에서 뛰어내리듯이 모든 것을 잊고 연주하는 홀가분함이나 그럴 때의 행복감도 알지 못했을 테다.

내가 첼로를 하지 않았다면, 하루 종일 생각하고 준비했던 연주가 끝나고 늦은 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함께 연주한 동료 음악가들과 저녁을 먹으며 긴장을 푸는 한가로움도 몰랐을 것이다. 무대에서 청중에게 인사하면서 같이 연주한 지휘자와 함께 "이 부분 오늘 어땠어?", "어제보다 더 좋았던 것 같지 않아?", "오늘 정말 재미있었어!" 하며 대화를 나누는 재미도 몰랐을 것이다.

내가 첼로를 하지 않았다면, 무대로 걸어 들어가기 직전, 모든 정신과 마음을 모아 집중하고 이 연주가 진정 감동을 주는 연주이기를 기도하는 간절한 자세를 갖지 못했을 것 같다. 연주가 끝난 뒤 밤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고 들떠서 홀로 드리는 감사 기도 역시 몰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