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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나 칼럼] 비발디 연주의 즐거움

힘차면서 날렵, 깊으면서 유연
       고통의 준비과정 뒤엔 희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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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런던에서 새 음반 녹음을 마쳤다. 처음으로 바로크 레퍼토리를 선택했다. 비발디(Antonio Vivaldi)는 30개에 이르는 첼로 협주곡을 남겼다. 지금은 자주 연주되지 않지만 이 협주곡들을 통해 첼로라는 악기는 역사상 처음으로 '반주악기'에서 '솔로악기'로 격상했다. 그래서 나는 비발디가 '첼로의 성경'으로 불리는 바흐의 무반주 조곡을 위해 미리 첼로를 솔로악기로 변화시켜 놓았다고 생각한다.

비발디의 7개의 협주곡을 현(絃) 오케스트라와 하프시코드, 오르간, 테오보(바로크 시대의 아주 큰 기타), 유클레이디(바로크 시대의 작은 기타)와 함께 녹음하며 그가 얼마나 상상력이 풍부하고 드라마틱한 성격의 소유자인지 알게 되었다. 현대음악에 가까운 화음의 변화, 애간장을 녹이는 느린 선율들, 피가 거꾸로 솟게 만드는 박력 있는 리듬감에 매료되어 우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녹음 작업에 몰두했다.

런던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 오케스트라와 첫 리허설을 했다. 비발디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난 옛날의 그림자가 아닌 지금 살아 숨쉬는 비발디를 남기고 싶었다. 힘차면서도 날렵하고, 깊으면서도 유연하고 날씬한 소리가 내가 찾는 비발디의 소리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이런 소리를 찾으려면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지만 오케스트라의 매력은 단원들이 공감하기 시작하면 무엇이든 아주 빨리 성사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음날 무대 리허설 때부터 여러 아이디어들을 오케스트라와 같이 시도해 보았고 그날 밤 연주 때에는 기대 이상의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연주 다음 날. 드디어 녹음 시작이다. 런던에서 녹음할 때마다 이용했던 애비 로드(Abbey Road) 스튜디오로 향했다. 비틀스의 스튜디오로 유명한 애비 로드의 하얀 담장에는 많은 비틀스 팬들이 쓴 메시지들이 남아 있다. 이 담장에는 새 팬들이 메시지를 쓸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하얀 페인트가 새로 입혀진다고 한다.

이번 비발디 녹음의 어려움은 모든 것이 너무나 투명하게 노출된다는 점이었다. 바로크의 모든 음은 섬세함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케스트라와 나는 협주곡 하나하나를 어느 때보다 치밀하게 완성해 나가며 녹음해야 했다. 나흘 동안 총 21시간을 스튜디오 안에 있었지만 이 중 반 이상은 연습 시간으로 사용한 것 같다.

모두가 "이 소리다!"라고 만족하는 순간부터 진짜 녹음이 시작된다. 모든 단원들이 열성적으로 콘트롤 룸에 들어와 같이 연주를 들으며 많이 친해졌고 곧 단원들과 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자유롭게 의견 교환을 할 수 있었다. 작은 앙상블과 작업하는 맛은 이런 개인적인 관계에서 오는 열성이 아닌가 싶다.

며칠씩 계속되는 녹음 작업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떨어지지 않는 스태미너와 집중력이다. 이번에 특별히 힘든 점이 있었다. 연주 중 왼쪽 새끼 손가락이 찢어졌던 것이다. 반창고를 붙이고 녹음을 하려고 했지만 반창고가 계속 옆줄을 건드리며 소리를 내서 결국 반창고를 떼고 맨손가락으로 녹음을 했다. 하루만 쉬면 아물 상처인데 땀이 난 상태에서 계속 쇠줄 위를 누르니 나을 틈이 없었다. 간혹 찢어진 부위로 줄을 누르면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아팠지만 다행히 집중한 상태에서 아픔을 잊고 녹음을 마칠 수 있었다.

몇십 년이 흐르고 내 생각이 변한 뒤에 다시 들어도 녹음에 남아 있는 해석만으로도 감동이 전해져야 한다고 믿는다. 시간과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고 많은 사람들과 나의 음악을 나눌 수 있는 통로는 녹음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스튜디오에 들어갈 때마다 벅찬 즐거움과 책임감이 언제나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