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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구제역·동일본 대지진 … “물가 도미노 인상 겁나요”


폭설·구제역·동일본 대지진 … “물가 도미노 인상 겁나요”

[중앙일보] 입력 2011.03.16 00:17 / 수정 2011.03.16 00:17

중앙일보 기자, 20년차 주부 2인과 생활 물가 급등 현장 동행해보니

 14일 서울 창동 이마트에서 서울시 물가조사요원 강영옥씨가 명태값을 살펴보고 있다. 주로 일본에서 들여오는 명태의 가격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급등했다. [변선구 기자]
“새벽에 노량진수산시장에 갔는데 명태는 비싸서 못 사왔어요. 일본 지진 때문에 명태가 확 줄었더라고요. 지금은 미리 확보해둔 명태를 마리당 5000원에 파는데, 오늘 노량진에서 들여왔으면 8000원에 팔았을 거예요.” 14일 서울 마천동 마천중앙시장. 물가 조사 중이던 변용옥(48)씨가 명태 값을 묻자 생선가게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생물 명태는 주로 일본에서 들여온다.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가 서울 시민의 식탁에까지 미친 것이다.

이날 노량진수산시장에서 거래된 일본산 명태 경매가는 박스당 평균 6만7800원. 동일본 대지진 전만 해도 박스당 3만원이던 가격이 며칠 새 배 이상으로 올랐다. 변씨는 “이제 명태도 식탁에서 보기 힘들어지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변씨는 전국주부교실중앙회원으로 3년 전부터 물가조사를 해왔다. 지난 1월부터는 송파구 내에 있는 대형마트·재래시장 등 4곳에서 매주 2차례 농·축·수산물 16개 품목의 가격을 조사해 서울시 물가정보 사이트에 올린다.

 같은 날 또 다른 조사요원인 강영옥(50)씨는 서울 창동 신창시장에 있었다. 강씨의 눈길을 끈 건 닭값과 계란값. 1kg짜리 생닭 1마리가 6000원에 팔렸다. 3일 전 조사할 때보다 500원 오른 값이다. 30개 들이 왕란 가격도 300원 오른 5300원이었다. 강씨는 “구제역과 동일본 대지진에 묻혀 있지만 조류인플루엔자(AI)가 쉽게 진정되지 않는 모양”이라며 “가뜩이나 물가가 많이 올랐는데 자꾸 악재가 겹쳐 걱정”이라고 말했다.



 본지는 변씨·강씨와 함께 마천중앙시장과 홈플러스 잠실점, 신창시장과 이마트 창동점을 찾아 생활 물가 급등 현장을 살펴봤다. 20년 차 주부인 이들은 최근 물가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고 진단했다. 생활 물가를 구성하는 여러 품목의 가격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나선형으로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14일 서울 마천동 마천중앙시장에서 서울시 물가조사요원 변용옥씨가 무값을 살펴보고 있다.
①연쇄 상승=변씨와 강씨는 이구동성으로 “최근 장보기가 무서운 건 물가가 연쇄적으로 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겨울 폭설·한파 등 이상기후로 채소값이 급등했다. 처음엔 배추값이 폭등했지만 오름세는 배추에서 무로, 대파에서 양파로 금세 옮아갔다. 조금이라도 싼 채소로 수요가 옮겨간 까닭이다. 최근 한두 달 사이 생선값이 오른 것도 같은 이유다. 구제역으로 육류값이 뛰자 고기 대신 생선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하지만 이상기후로 오히려 어획량이 줄면서 대표적 ‘서민 음식’이던 고등어마저 마리당 4000원 수준이 됐다.

②하방 경직성=한번 값이 오르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배추가 대표적이다. 배추파동 당시 포기당 7000원까지 했던 배추값은 현재 4500~5000원에 거래된다. 지난해 1월 가격이었던 포기당 2400원의 두 배인 셈이다. 값이 내려도 제자리로 돌아오지는 않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울상 짓는 이유는 또 있다. 포장 때문이다. 제조업체와 유통업체들의 경우 가격은 그대로 두고 용량을 줄이는 것이다. 3㎏씩 팔던 설탕은 2.75㎏, 200g이던 치약은 170g으로 줄이는 식이다. 변씨는 “기업이 원자재값이 떨어진다고 올렸던 가격을 내린 적이 있느냐”면서 “용량을 줄이기 때문에 가격 인상을 당장 체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③전방위 상승=변씨와 강씨는 “식료품과 공산품만 아니라 집값·등록금 등 모든 물가가 전방위적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4인 가족인 강씨의 경우 요즘 한 달 식료품비로 150만원가량을 쓴다. 지난해엔 110만원이면 충분했다. 사립대에 다니는 딸의 등록금도 3%가량 올랐다. 강씨는 “한 학기 등록금이 600만원은 우습게 넘는다”고 말했다.

 군 복무 중인 아들을 빼면 여섯 가족이 함께 사는 변씨는 식료품비를 아끼려고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을 이용한다. 지난해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몸이 불편한 노모를 모시고 있어 자격증이 있으면 정부로부터 월 40여 만원의 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살림은 빠듯하다. 잠실에 사는 그는 “최근 이웃으로부터 전셋값을 1억원 올려줬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전세 사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더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올 하반기 상수도요금 등 공공요금이 오를 예정이라는 것도 걱정스럽다. “정말 남편 월급 빼곤 오르지 않은 게 없어요. 어떻게 또 1년을 살지 막막하네요.”

 
글=정선언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