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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연구] 세계 최대 '대장간' 만든 섬마을 선생님


 

태웅 허용도 회장
"왜 우리는 세계 1등 못해?" 전재산 1300만원 털어 창업
부부 지분 합치면 재산 1조 "돈 좇지말고 재미를 좇아라"

태웅 허용도(61) 회장에게 인터뷰 요청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가 가수 이미자씨의 '섬마을 선생님' 노래를 한참 동안 들었다. "열아홉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선생님…"이라는 휴대폰 통화연결음 노래를 듣고 있으니, 저쪽에서 "여보세요"라는 응답이 왔다. '비서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제가 허용돈데요"라고 했다. 상장회사 보유 지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10위권 부자인 허 회장은 '뽕짝'을 휴대폰 통화연결음으로 삼고, 전화를 직접 받는 사람이다.

"빨리 출근해 일하고 싶어서 잠을 설쳤다"

태웅은 '세계 최대의 현대식 대장간'이다. 쇳덩어리를 불에 달군 뒤 프레스 등으로 두드려서 풍력·원자력 등 각종 발전장비·선박·기계의 부품을 만드는 단조(鍛造)회사다. 지난해 6153억원 매출에 영업이익 1003억원을 기록하며 연말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1위를 달성했다. 허 회장은 부인이 보유한 지분까지 합치면 재산이 1조원에 육박한다. 한국의 100대 부자 중 창업자의 2·3세가 아니라, 당대에 창업해 스스로 부를 일으킨 몇 안 되는 사람이다.

그의 휴대폰 통화연결음엔 사연이 있다. 경남 산청 출신인 그는 진주교대를 졸업하고 통영에 있는 작은 섬 욕지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허 회장은 "꼭 섬마을 선생님이었던 내 이야기인 것 같고, 사업할 때 '교사 출신이니 속이지는 않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덕을 많이 봤기 때문에 휴대폰 통화연결음으로 삼았다"고 했다.

그는 교사 생활 5년을 끝으로 친척이 운영하는 작은 단조회사로 옮겼다. "오후 1~2시만 되면 수업을 모두 끝내고 5~6시 교무실 종례할 때까지 별일 없이 앉아 있는 것이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했다.

1981년 친척이 했던 단조회사가 부도나자, 그는 전 재산 1300만원을 털어서 직접 태웅단조공업사를 세웠다. 부산 사상공단 변두리의 250평짜리 공업소에 공기압으로 작동하는 0.5t짜리 에어해머 한 대를 들여놓고 사업을 시작했다. 3년 뒤에는 은행 경매로 나온 땅을 분할상환 조건으로 구입해 직접 공장을 지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공장에 빨리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새벽 4~5시에 공장에 나가 가열로(加熱爐)에 불을 붙이고, 그래도 할 일이 없으면 공장 이곳저곳을 청소하고 기계를 닦았다. 공장 식구들이 출근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마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내가 평생 동안 새벽 일찍 일어나는 것은 그날 할 일이 즐거워서 기대와 흥분으로 마음이 설레기 때문"이라고 한 말과 비슷했다.

태웅 허용도 회장이 부산 강서구 녹산공단 공장에서 단조작업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허 회장 뒤편에 보이는 것은 세계 최대의 1만5000t급 프레스가 단조제품을 가공하고 있는 모습이다./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도전, 또 도전

그의 성공에는 고비 때마다 동종 업계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투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0년 그는 부산 다대동에 공장을 신설하며 국내 최초로 지름 3m짜리 링을 만들 수 있는 롤링밀(ring roll mill)을 도입했다. 과거 링을 만들려면 둥근 철판의 가운데를 잘라내야 했는데, 링 롤링밀은 둥근 쇳덩어리의 가운데에 구멍을 뚫은 뒤 밖으로 계속 늘려서 링을 만드는 기계다. 원료 낭비가 훨씬 적다. 당시 태웅은 자본금이 5000만원, 1년 매출규모가 5억원에 불과했다. 그런 태웅이 16억원짜리 기계를 들여놓겠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했다.

허 회장은 "단조업계의 경쟁력은 생산해낼 수 있는 제품의 크기나 종류에서 판가름나는 것"이라며 "그 기계를 도입하면 지름 3m 이상 단조품 시장을 독점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 투자 덕분에 태웅은 국내 대형 단조품 시장을 휩쓸고, 일본에 첫 수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후 그는 한국 최초·최대가 아니라 세계 최초·최대에 끊임없이 도전했다. 2004년 일본 업체들도 지름 5m짜리가 최고일 때 그것의 2배에 가까운 세계 최대 지름인 9m짜리 링 롤링밀을 설치했고, 2008년에는 세계 최대규모인 1만5000t 프레스를 도입했다. 이로써 태웅은 단일 단조회사로 세계 최대 업체로 부상했다.

대형 단조품을 만들 능력을 갖추면서 풍력발전기의 주요 부품인 타워플랜지(발전기 타워의 원통형 기둥을 연결하는 이음새 부품)와 메인샤프트(날개의 운동에너지를 터빈에 전달하는 회전축) 등 풍력발전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이것이 최근 세계 녹색에너지시장 팽창과 맞물려 태웅이 급성장하는 바탕이 됐다. 작은 관 이음새를 만들던 대장간 수준의 공업사에서 세계 최대 풍력발전기업체인 베스타스와 GE, 지멘스와 현대중공업, 두산중공업 등 글로벌기업에 핵심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로 성장한 것이다.

허 회장은 "사업하는 사람은 뭐든지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1등을 하고 말겠다는 기질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왜 우리가 세계 1등을 못해?'라는 오기가 있었기에 과감하게 투자했고 새 시장을 뚫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다시 주변에서 '무모하다'는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원료인 잉곳(쇳덩어리)을 자체 생산하기 위해 전기로 제철소(고철 원료를 전기로 녹여 철강 제품을 만드는 제철소) 건설을 검토 중이다.

허 회장은 "사업이라는 건 신이 들려야 하는 것 같다"면서 "어려우면 어려움을 해결하는 재미로, 순조로우면 닥쳐올 문제가 무엇일지 미리 챙겨보는 재미로 해야지 '돈을 얼마나 벌어야지' 하는 생각으로는 절대 오래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