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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된 퍼스트레이디


 
 
 
부부 대통령의 탄생
 

2007년 10월 28일 아르헨티나 여당인 ‘승리를 위한 전선(FV)’의 대선 후보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Cristina Fernandez) 가 압도적인 표차로 차기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로써 세계 최초로 남편과 부인이 선출직 대통령이 되는 기록을 남겼다. 아르헨티나의 최초 여성 대통령은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의 세 번째 부인인 이사벨 페론으로 1974년 페론이 사망하자 부통령 자격으로 그의 뒤를 이어 집권했다. 이사벨 페론이 대통령직을 승계한 데 반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공식적인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출마를 공식 선언한 순간부터 실제 투표가 이뤄질 때까지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했던 크리스티나는 4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23%의 득표율에 그친 엘리사 카리오 후보를 20%포인트 이상 따돌렸다. 아르헨티나는 45%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거나 40% 이상을 득표하고, 2위와의 표차가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면 결선투표를 하지 않고 곧바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에 따라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결선 투표 없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크리스티나에게는 제2의 에바 페론, 아르헨티나의 힐러리, 파타고니아의 표범, 보톡스의 여왕, 남미의 이멜다 등 많은 별칭이 따라다닌다. ‘제2의 에바 페론’은 아르헨티나에서 성녀로 추앙받는 에바 페론(에비타)과 크리스티나를 비교해 부르는 말이다. 이는 크리스티나가 에바 페론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층과 빈민층에서 인기가 높았고, 좌파민족주의에 기반한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펼친다는 점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힐러리’란 별칭은 법과대학을 나와 변호사로 일하고, 상원의원이 된 점, 남편이 대통령이라는 점, 남편에 이어 대선에 출마한 점 등이 힐러리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붙여졌다. ‘파타고니아의 표범’은 카리스마와 추진력이 있다는 뜻에서 아르헨티나 남부의 파타고니아 초원에 사는 표범에 빗댄 말이고, 그의 적이 붙여준 부정적인 의미의 ‘보톡스의 여왕’이란 별칭은 그가 수차례 성형수술을 하는 등 겉모습에 집착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크리스티나가 구두로 저택의 방 하나를 채울 정도의 구두 수집광이라는 사실에 빗대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의 부인인 이멜다와 비슷하다고 해 ‘남미의 이멜다라고’도 불린다. 실제 크리스티나는 외국의 특정 브랜드의 생수만을 마시고, 유명 디자이너의 옷만 선호한다고 전해진다.

어찌됐든 선거 기간 동안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에서 두 번째의 여성 대통령이자 아르헨티나 최초의 선출직 여성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크리스티나와 네스토르 부부는 로이터통신이 전한 대로 “아르헨티나 역사상 후안 페론과 에비타 이후 가장 막강한 부부”가 되었다.1)

 

퍼스트레이디에서 대통령으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1953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라플라타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국립 라플라타대 법학과를 다니던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 1975년 결혼했다. 대학 시절 페론대학청년단에서 활동했던 그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 군정의 페론당 탄압으로 아르헨티나의 최남단 리오 가제고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변호사 일을 하던 크리스티나는 1983년 민정이 들어서자 정치 일선에 나서기 시작했다.2) 그가 정치계에 입문한 것은 1989년 산타크루즈 의회 의원에 당선되면서부터였는데, 이 당시 그는 산타크루즈 주민들로부터 ‘레이나크리스티나(크리스티나 여왕)’란 애칭을 선사받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3) 정치 생활을 시작한 크리스티나는 1995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세 차례나 상원의원을 지냈다. 그는 정치인으로 살면서 인권 문제와 여성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그가 결혼 후에도 미혼일 때의 성(姓)을 유지하는 것도, 또 2007년 8월 “나는 프레지던테(presidente, 대통령)가 아닌 프레지던타(presidenta, 여성 대통령)라 불리고 싶다”는 말도 여성 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을 대변해준다.4)

2003년 크리스티나는 남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핵심 참모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타고난 언변과 대중 선동력에 힘입어 2005년에는 아르헨티나의 최대 도시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에두아르도 두알데 전 대통령의 부인인 힐다 곤살레스와 대결해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이 일을 계기로 크리스티나는 정치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상원의원 사무실을 대통령궁에 설치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높은 지지에 힘입어 대선 출마를 조심스레 점치던 크리스티나는 2007년 7월 19일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대선에 뛰어들었다. 그에 앞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2007년 7월 1일 “재선 출마를 포기하고, 아내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도록 선거운동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5)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던 때 크리스티나의 지지율은 45%에 이르렀고, 선거 기간 내내 지지율이 오를망정 떨어지지는 않았다. 영국의 BBC 방송은 “여론조사 결과 등을 감안할 때 크리스티나 의원이 2차 결선투표를 치를 필요도 없이 1차 투표에서 무난히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6)

크리스티나의 대선 승리는  큰 악재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예견된 일이었다. 야권에서는 크리스티나가 당선되는 데 큰 배경으로 작용한 현 정부의 경제 실적이 사실은 조작된 것이라며 크리스티나를 공격했지만 그리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2007년 9월 아르헨티나 국립통계센서스연구소에서는 2007년 2분기 경제실적을 발표하면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8.7%, 인플레율은 9%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야권에서는 연구소가 이 수치를 조작했고 그 배후에 정부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인플레율이 25%에 이른다는 것이다. 특히 알폰소 프라트 게이 전 아르헨티나 중앙은행 총재는 “실질 빈곤율이 수치스러운 수준인 30% 선에 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를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다.7)

그러나 이런 의혹은 대권 판도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오히려 크리스티나는 높은 지지율이 계속되자 국내 유세보다는 해외를 순방하며 자신의 외교력을 과시하는 전략을 썼다. 국내 선거 유세는 주로 2001년에 비해 지금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보여주는 TV광고에 주력했다.


부부 대통령 장기집권 계획?

 

사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가 재선에 도전하지 않고 부인을 내세우는 것에 많은 추측이 나돌았다. 네스토르가 측근 부정부패 추문과 지방선거 패배를 극복하기 위해 크리스티나를 내세웠다거나 병을 앓고 있다는 식의 추측이 그것이다. 또 흥미로운 추측이 나돌기도 했는데 그것은 바로 ‘부부 대통령 장기집권 계획’의 일환이라는 것이었다. 『뉴욕타임스』는 “(4년 중임제인 아르헨티나 대통령 임기에서) 부인이 10월 대선에서 이기면 4년 뒤 남편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8)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2007년 2월 아르헨티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크리스티나의 대선 출마설과 관련해 자신의 별명인 ‘펭귄’의 남녀 명사형을 이용 “펭귀노나 펭귀나 중 한 사람이 대선에 나설 것”이라고 언급했다.9) 당시 네스토르의 지지도는 52%,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의 지지도는 37%를 기록하고 있어 누가 나와도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스토르 대통령이 크리스티나의 출마설을 부인하지 않았던 것은 4년 중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에서 부부가 번갈아 출마해 대통령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즉 네스토르 키르치네르-크리스티나-네스트로-크리스티나 식으로 대통령을 역임하면 16년 동안 부부가 집권하게 된다는 것이었다.10) 이를 두고 대선 직전에 모나르키아(monarKia)란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크리스티나의 경쟁 후보들이 만들어낸 이 말은 키르치네르의 첫 번째 이니셜 K를 이용해 대통령 부부가 ‘K왕국’을 건설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11)


에바 페론에 대한 향수, 그리고 남편의 후광

 

영국 BBC는 크리스티나의 당선이 확정된 후 “아르헨티나가 보수적 사회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며 “에바 페론에 대한 향수가 이번 대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논평했다.12)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의 두 번째 부인이자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알려진 에바 페론은 1952년 33세의 젊은 나이에 자궁암으로 요절했다. 그를 두고 부정적인 시선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에바는 여전히 성녀로 추앙받고 있다. 미국의 팝가수 마돈나가 영화 <에비타>의 주연으로 발탁됐을 때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이를 반대했을 정도다. 그만큼 ‘에비타’에 대한 인기는 여전하다.

크리스티나의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BBC가 분석한 것처럼 에바 페론에 대한 향수, 그리고 남편 네스토르 대통령이 이뤄놓은 경제적 업적이었다. 우선 크리스티나는 좌파민족주의적 포퓰리즘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야권 후보인 로베르토 라바냐 전 경제장관은 “페르난데스가 전형적인 ‘포퓰리즘’ 행태를 드러냈다”고 비판했는데, 그것은 페르난데스가 저소득층에게 퍼주기 정책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13) 이러한 포퓰리즘적 정책과 뛰어난 미모 때문에 국민들은 크리스티나의 모습에 에바 페론을 오버랩시키며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남편의 후광이다. 2001년 950억 달러의 ‘국가채무 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며 사실상 파산을 선고한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2003년 네스토르 키르치네르가 구원투수로 등장하며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집권 초기 22%에 달하던 실업률은 8.5%로 떨어졌고, 국내총생산(GDP)도 연간 8~9% 성장을 거듭했다. 이런 부양책에 힘입어 집권 초기 22%의 낮은 지지율로 시작한 네스토르 정권은 해를 거듭하며 지지율을 높였고, 이는 고스란히 크리스티나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 또한 네스토르 정권이 대선과 함께 정부 예산 가운데 공공지출을 12% 확대하고 각종 경기부양책을 발표한 것도 크리스티나의 당선을 돕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아르헨티나는 다시 눈물을 흘릴 것인가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지 마오(Don’t cry for me, Argentina).”

포퓰리즘으로 대변되는 에바 페론은 죽기 직전 자신을 위해 몰려온 군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서른세 살에 자궁암으로 요절한 에바 페론은 그렇게 포퓰리즘의 상징적인 장면을 세상에 남겼다. 이 말에 빗대 『파이낸셜타임스』는 대통령에 당선된 크리스티나 앞에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가 많이 있다며 “차기 ‘에비타’를 맞이할 아르헨티나가 눈물을 흘리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14) 그리고 블룸버그 통신은 “키르치네르의 경제정책은 중장기 성장을 희생하고 단기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며 “다음 대통령이 대가를 치를 가능성이 많다”고 분석했다.15) 크리스티나가 ‘제2의 에바 페론’과 경제정책의 실패로 군부 쿠데타로 물러난 ‘제2의 이사벨 페론’의 갈림길에 섰다는 언론보도는 그의 앞에 산적한 경제 문제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실제 크리스티나 정권에는 여러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우선 떨어지는 경제성장률과 높아지는 인플레가 크리스티나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또 에너지 부분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에너지 위기가 닥쳐올 수도 있다. 실제 아르헨티나에는 2007년 7월 한차례의 에너지 위기가 닥치기도 했다. 남편은 그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고도성장의 후유증 또한 안겨줬다.

크리스티나는 과연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제2의 에바가 될 것인가, 아니면 경제정책의 실패로 국민들에게 환멸을 안겨준 제2의 이사벨이 될 것인가?

 

최을영

(이글은 월간 <인물과사상> 12월호에 실렸습니다.)

 

---------------|  주 |------------------

 

1) 윤지로, 「아르헨 대통령 당선 페르난데스, 경제 살린 남편 후광 ‘톡톡’」, 『세계일보』, 2007년 10월 30일, 3면.

2) 대선 당시 크리스티나가 사실은 라플라타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는 학위 위조 의혹이 일기도 했다.

3) 이지혜, 「아르헨, 부부 대통령 탄생 확실」, 『내일신문』, 2007년 10월 26일, 7면.

4) 「지구촌 말말말」, 『세계일보』, 2007년 8월 17일, 22면.

5) 권대익, 「아르헨티나는 퍼스트레이디를 좋아해」, 『한국일보』, 2007년 7월 5일, 13면.

6) 권대익, 「아르헨티나는 퍼스트레이디를 좋아해」, 『한국일보』, 2007년 7월 5일, 13면.

7) 임성수, 「대선 앞둔 아르헨티나 경제 실적 조작설 부상」, 『국민일보』, 2007년 9월 18일, 10면.

8) 권혁철, 「아르헨티나 네스토르 대통령 아내 크리스티나 대선 출마」, 『한겨레』, 2007년 7월 3일, 13면.

9) 박선영, 「남미, 독재 망령 부활하나」, 『한국일보』, 2007년 2월 14일 16면.

10) 박선영, 「남미, 독재망령 부활하나」, 『한국일보』, 2007년 2월 14일 16면.

11) 김영식, 「‘2007 에비타’ 크리스티나… 남편 이어 아르헨 대통령 유력」, 『동아일보』, 2007년 10월 27일, 2면.

12) 유희연, 「아르헨, 유별난 ‘영부인 사랑’」, 『문화일보』, 2007년 10월 29일, 5면.

13) 송한수, 「Mrs. 페르난데스 대통령 당선 확실」, 『서울신문』, 2007년 10월 29일, 10면.

14) 김영식, 「‘2007 에비타’ 크리스티나… 남편 이어 아르헨 대통령 유력」, 『동아일보』, 2007년 10월 27일, 2면.

15) 김영식, 「‘2007 에비타’ 크리스티나… 남편 이어 아르헨 대통령 유력」, 『동아일보』, 2007년 10월 27일,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