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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아들과 며느리 의사의 결혼, 시아버지가…

변호사 아들과 며느리 의사의 결혼, 시아버지가…

  • 석남준 기자
  • 입력 : 2012.03.26 03:11 | 수정 : 2012.03.26 05:11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2부-<1> 내힘으로 작은 결혼식
    어느 시아버지의 소신 - 신랑은 변호사, 신부는 의사… 양가 가족 25명씩만 초대해 호텔 회의실 빌려 식사대접
    시어머니·신부가 달라져야 - 식장·예단은 신랑쪽 부모, 결혼당일 비용은 신부입김 세… "서로 지출 줄여 집값 분담을"

    "3남매 중 위로 둘은 딸이라 사돈이 하자는 대로 결혼식 치렀습니다. 막내인 아들만은 제가 오래 꿈꿔온 대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일수(66) 원장은 작년 9월 아들 주은(35)씨를 결혼시켰다. 식장은 서울 시내 특1급 호텔 중 하나인 리츠칼튼호텔로 잡았지만, 하객 숫자는 혼주까지 양가 합쳐 딱 50명이었다. 호텔 연회장 대신 회의실을 빌려, 주인공인 신랑·신부까지 52명이 1인당 10만원짜리 양식 코스를 먹고 헤어졌다. 꽃장식 비용 60만원까지 총 600만원 들었다.

    "제 누이 다섯 명과 아내의 형제자매 네 명도 미리 양해를 구하고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신혼부부가 개별적으로 인사를 돌았지요. 사돈댁도 마찬가지로 하셨습니다."

    김 원장 아들 주은씨는 대형 로펌 변호사다. 며느리(31·서울대병원 전문의)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딸이다.

    신랑 아버지인 김 원장은 고려대 법대 학장을 지내고 한국형사법학회장·법무부 정책위원장 등을 두루 거쳤다. 강릉 출신으로 인품이 소탈하고 발이 넓다. 사회적 지위로 보나 인맥으로 보나 얼마든지 수백명 불러 호사스럽게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아들이 과시 없이 겸손하게 인생을 시작하길 바란다"는 마음에서 '작은 결혼식'을 밀어붙였다. 신랑 어머니 이신희(64)씨는 "며느리가 화려하게 꾸미려는 욕심이 없어 기특했다"고 했다.

    25일 오전 서울 안암제일교회 앞에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일수 원장(가운데)이 아내, 아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김 원장의 며느리는 내내“쑥스럽다”고 하다가, 이날 마침 급한 진료가 있어 함께하지 못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생활개혁실천협의회 신산철 사무총장은 "한국 결혼식이 달라지려면 김 원장 가족처럼 신랑 부모와 신부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본지가 여론조사 회사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의 혼주 210명과 신혼부부 200명을 조사해보니, 혼주들은 결혼 과정과 비용을 결정하는 데 가장 입김이 센 사람으로 ①신랑 어머니(23.3%)와 ②신랑 아버지(12.4%)가 꼽혔다. 신랑이 신혼집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식장과 예단 규모를 정할 때 신랑 쪽 부모의 발언권이 세다는 얘기다.

    한편 신혼부부들은 ①신부(31.0%)와 ②신랑 어머니(19.0%) 발언권이 세다고 했다. '이날은 내가 주인공'이라는 신부의 허영심이 웨딩사진·드레스·메이크업·꽃 장식 등 결혼식 당일 비용을 좌우한다. 신부가 욕심을 부리는데, 평생 모은 돈을 털어 신혼집 마련해주는 신랑 어머니만 예단 욕심을 억누르긴 힘들다.

    한국웨딩학회 김인옥 회장(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은 "양가가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고 함께 집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신랑 부모는 하객 욕심, 신부도 드레스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김 원장 부부는 결혼식을 5개월 앞두고 상견례할 때 사돈에게 '50명만 모이자'는 얘기를 꺼냈다. 사돈집도 흔쾌히 동의했다. 예물·예단·폐백도 양가가 합의해 생략했다. 신랑 어머니는 평소처럼 집에서 직접 화장하고 딸 결혼식 때 입은 한복을 다시 꺼내 입었다. 김 원장도 평소 입던 양복을 입고, 부인이 모는 차로 식장에 갔다.

    워낙 소규모라 사회자도 따로 세우지 않았다. 원탁이 여러 개 놓인 회의실에 신랑·신부가 도우미 없이 입장했다. 양가 50명이 양식 코스를 먹으며 신랑·신부 어릴 때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고, 앞으로 행복하라고 덕담을 했다. 끝으로 신랑·신부가 하객들 앞에서 자기 힘으로 마련한 결혼반지를 나눠 끼었다.

    김 원장은 결혼식이 끝난 뒤에야 아주 가까운 이들에게만 "실은 아들을 장가 보냈다"고 털어놓았다. 수십년 알고 지낸 동료 교수도 취재팀 문의 전화를 받고 "그 양반이 아들 결혼시킨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했다.

    김 원장은 "내가 무슨 큰 희생을 한 게 아니라, 선배들을 보고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고 다짐한 걸 실천했을 뿐"이라고 했다. 고(故) 김인수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손봉호(74) 전 동덕여대 총장이 같은 방식으로 자녀를 결혼시켰다.

    "아들 결혼식을 크게 치렀다면 아는 분들이 의무감으로 많이 오셨겠지요. 저도 빚진 기분이 들었을테고요. 앞으로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은 결혼만 찾아가면 되니 홀가분해요. 지금껏 낸 축의금이 아깝지 않냐고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니 안 바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