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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에 회사 때려치운 친구, 행복하지?

서른에 회사 때려치운 친구, 행복하지?

[오마이뉴스 박진희 기자][# 1] 좋은 말론 프리랜서, 나쁜 말론 백수 
▲ 반 백수의 식사 날계란에 밥 비벼먹기. 계란 프라이팬을 하려면 프라이팬 설거지까지 해야 하니까.
ⓒ 박진희

함께 사는 동성 친구가 있다. 우리는 서로를 '동거녀'라고 부른다. 닮은 것도 많으나 다른 것도 많고, 추구하는 것이 같으면서도 식성은 꽤나 다른 10년 지기 친구이다.

'글 쓰는 것'을 꿈꾸며, 위로하고, 격려하며 지낸 지도 올해 들어 10년이 되었다. 같은 전공으로, 혹은 같은 직종 - 기자, 출판사 편집자 -으로 거의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3년 전부터 우리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했다.

각각 다른 출판사를 다니고 있던 3년 전 어느 날, 동거녀는 사표를 냈다. '자신만의 글'을 쓰고자 하는 확고한 꿈이 있던 그녀에겐 자신의 이름이 어느 곳에도 들어가지 않는 다른 저자의 표지문안을 쓰는 것이 많이 힘들었으리라. 그렇게 여러 가지 스트레스의 원인은 제공하여도, 그것을 인내하는 조건으로 꼬박꼬박 월급을 넣어주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좋게 말하면 '프리랜서' 나쁘게 말하면 '백수'라는 이름으로 산 지 만 3년을 넘어섰다. 그리고 33세가 된 그녀는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만 살던 '드라마' 작가 수업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다.

[# 2] 부럽다는 말, 이제 지겹다구

두당 2만 원쯤 하는 소그룹 글쓰기 과외를 하거나, 스파게티 가게 서빙을 하고, 작은 잡지사에 기고를 하면서 한 달 교통비 정도를 벌고, 카드값을 돌려 막으며 산 지 3년. 다음 달 카드값은 어떻게 막지 고민하던 그녀의 삶을 온전히 지켜본 나로선 사실 애틋한 마음이 먼저 든다. 매번 그녀를 숨 막히게 하는 다음 달 월세, 매번 그녀의 마음을 무너지게 하는 고향에 계신 엄마의 잔소리, 이런 현실을 조금도 생각지 않고 매번 "회사 안 다니고 하고 싶은 일 하는 네가 부럽다"고 말하는 지인들의 답답한 말들은, 사실 겨우 겨우 견고하게 다진 그녀의 마음에 거센 바람을 일으킬 뿐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우리가 정말로 부러워해야 할 것은 '회사에 매여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프리랜서만큼 정서적으로 '프리'를 느낄 수 없는 직업도 없다. 그녀에게 정말로 부러워해야 할 것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그 와중에도 '누릴 수 있는 행복'은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동네를 오가며 마주치는 작은 새소리, 고양이 발걸음,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아주 순수한 이야기…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현재를 즐기지 못하며 사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가난하지만 값진 '오늘'과 '일상'을 얻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조금은 특별한 일상을 모아 얼마 전에는 책도 냈다.

그녀의 꿈도 이뤄지면서 돈도 함께 들어오면 좋았으련만, 책이 다 팔려야 계약금 외 인세가 나온다는 게 조금은 그녀를 좌절케 하기도 하지만, 오늘도 하루에 열두 번씩 무너지는 꿈을 일으켜 세우고 토닥토닥 위로해주는 그녀가 아름답다.

[# 3] 비로소 인생은 달콤해졌을까

▲ 도보여행 걷는 데 일가견이 있는 동거녀는 웬만한 거리는 다 걸어다닌다.
ⓒ 박진희

어쨌든 같은 꿈을 지녔지만, 뭔가 나의 글을 쓰기 보다는 남의 글을 고쳐주며, 이것도 하나의 내 꿈으로 가는 길이야 자위하는 나로서는 더디 가는 그녀가 오히려 훨씬 더 빠른 길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같지만 다른 길을 서로 지켜보면서 이해하고 수용하고 격려해주고 있다. 어쩌면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루에 열두 번씩, 회사를 때려치고 싶을 때마다 꿈을 좇고 있는 그녀에게 대리만족을, 그리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꿈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회사에서 모든 하루를 쏟고 오는 내게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말이다.

어느날, 그녀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매일 아침 부산하게 출근 준비를 하고 뛰쳐나가는 내 모습을 보며, 널브러져 있는 자기 옆에 또 하나 널브러진, 자신의 이름이 저자로 되어 있는 <서른, 비로소 인생이 달콤해졌다>를 보면서 구역질이 날 것 같기도 했단다. 세상은, 인생은 단 한번도 달콤한 걸 건넨 적이 없고, 자신은 이렇게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 있는데, 어쩌자고 이런 문장을 책 제목으로 지었을까, 놀라기도 했다고.

[# 4] 내가 굳건히 지켜내야만 하는 자유!

▲ 낯선 길 그녀의 삶을 응원한다
ⓒ 박진희

남들 눈에는 그저 '프리'하게만 보이겠지만, 함께 사는 나는 그녀가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쪼개고 아껴쓰는지 안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조금은 낯선 길, 어쩌면 훗날 내가 걷게 될 길, 그녀가 닦아놓아서 조금은 더 평탄해져 있을 그 길을 축복하고 사랑한다.

모두가 똑같이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퇴근을 하고, 누군가와 적령기에 만나 결혼을 하고, 누구나 똑같은 포즈로 찍은 웨딩촬영을 하는 것. 그것을 하지 않더라고 괜찮아! 그것만 생각하고 살기엔 나는 너무 하고 싶은 게 많아!'라고 외치는, 자유로운 듯 괴롭고, 즐거우면서도 슬픈 그녀의 인생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또 한 명의 친구를 응원합니다

쭉쭉빵빵 잘나가던 라디오 방송작가를 때려치우고(내 주위에는 왜 이렇게 때려치우는 사람들이 많을까, 맘 흔들리게 ㅜㅜ) 소설을 배우겠다며 백수가 된 노 작가의 삶도 함께 응원하고 싶다. 주막에서 새벽까지 설거지하며 모든 돈으로 6개월 산티아고 길을 떠난, 지금도 걷고 있는 34세의 그녀도 역시 응원해주길!

▲ 산티아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는 그녀를 응원하며
ⓒ 박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