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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교수 인터뷰


“실패를 낙오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경제 어렵게 해”

한겨레 | 입력 2009.07.29 20:10

 

[한겨레] [실패도 사회적 자산이다] < 7 > 안철수 교수 인터뷰


"우리나라에서 기업가 정신이 쇠퇴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는 한국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주범이기도 하고요." 안철수(47·사진) 카이스트 석좌교수는 28일 < 한겨레 > 와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한국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처럼 기업 환경이 어려운 시기일수록 역경을 딛고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데, 실패를 낙오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그 동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환경 어려울수록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 필요"
"중소·벤처기업 재원확대, 이면계약 관행 수정해야"


기업가 정신은 기업의 본질인 이윤 추구와 사회적 책임 경영을 위해 기업가가 마땅히 갖춰야 할 자세다. 안 교수는 사그라들고 있는 기업가 정신에 불을 지피기 위해서는 기업 환경을 둘러싼 현행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선 현 제도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로 '대표이사 연대보증 제도'를 들었다. 안 교수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빚을 얻을 때 또는 심지어 투자를 유치할 때도 대표이사가 연대보증을 서야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의 빚이 대표이사 개인의 빚이 돼 냉정하게 기업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만두지 못하고 손해가 나는 사업도 선금이라도 건지려고 뛰어드는 바람에 산업 전반적으로 공정가격을 무너뜨리는 주범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결과적으로 처음에는 한 기업만 위기상황에 처해있고 다른 기업들은 모두 건강한 경우라고 할지라도, 망해가는 기업이 계속 덤핑을 해서 공정가격을 무너뜨리고 결국 다른 기업들까지 망하게 만든다"며 "외국 학자들은 이를 '좀비 경제'(zombie economy)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한국은)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실리콘밸리는 수많은 벤처기업들에게 꿈과 희망, 도전 정신을 심어준 곳이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에서도 100개의 기업이 창업했다면 겨우 한 곳만 성공할 정도라고 한다. 안 교수는 실리콘밸리를 '성공의 요람'이 아닌 '실패의 요람'이라고 부른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실패한 기업가에게는 다시 기회를 준다"고 말했다. 이를 발판으로 다시 기회를 잡은 기업가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돼 성공 확률이 높아지고, 처음 시작하는 기업가들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창업에 뛰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본질은 성공 기업들에 대한 지원 시스템이 아니라, 실패 기업들에 대한 처리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며 "밝은 면이 존재하려면 어두운 면에 대한 인프라가 탄탄하게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한국의 기업 가운데 특히 중소·벤처기업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유사하다. 그런데 정작 문제가 창업자 자신에게 있을 때도 많다. 안 교수는 "창업자가 기본적인 경영 마인드나 경영을 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해 성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사업 파트너가 아니라 하청업체로 일할 수밖에 없는 공급사슬 구조가 중소·벤처기업들을 더욱 어렵게 한다. 아직 열악한 형편에 놓여 있는 대학과 벤처캐피탈, 금융기관, 정부 정책 등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안 교수는 기업가 정신을 북돋우기 위해 실패한 사람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으로 대표이사 연대보증 제도를 없애기 힘들다면 중소·벤처기업의 투자 재원을 확대하고, 이면계약 등의 잘못된 투자 관행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계기업은 빨리 퇴출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업들의 성공 확률을 높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방안으로 중소·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한 '멘토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안 교수는 "중소·벤처기업에게 필요한 실무 지식을 최단기간에 습득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대기업에서 정년퇴직하거나 구조조정으로 퇴직한 전문가들을 멘토로 활용하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대·중소기업 간 공정거래 관행을 개선하고, 중소·벤처기업 지원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대·중소기업 간 거래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는 추가적인 개발 요구로 계약 당시보다 비용이 2배가 드는 경우가 있다"며 "단순히 가격만 놓고 볼 것이 아니라 계약에서 납품까지 거래 과정 전반에 걸쳐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 끝 >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 사진 안철수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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