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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진 고양이는 쥐를 잡지 못한다”


“기름진 고양이는 쥐를 잡지 못한다”

[중앙일보] 입력 2010.12.31 01:20 / 수정 2010.12.31 09:23

새로 펴낸 삼성전자 사사(社史)

 

이건희 회장 ‘도전·창조’ 역설

연매출 150조원, 세계 최대 전자업체 삼성전자의 ‘성공 유전자(DNA)’는 무엇일까.

 스스로 ‘도전’과 ‘창조’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창립 40돌을 맞아 발간작업을 진행한 삼성전자의 40년 사사(社史)를 통해서다. 최근 대학이나 일반 도서관 등에 배포된 이 책자에는 1969년 회사 설립 후 지난해까지의 숨은 ‘명장면’들과 고 이병철 회장, 이건희(얼굴) 회장의 경영철학이 녹아 있다.

 ◆처음 공개되는 일화=사사는 ‘도전과 창조의 역사’ ‘도전과 창조의 유산’ 두 권으로 구성됐다. 여기에는 ▶세계 1위에 오른 메모리반도체 ▶휴대전화 강자를 만든 ‘애니콜’ 신화 ▶TV 명품 ‘보르도’ 브랜드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 등 40여 편의 장면이 단편소설 연작처럼 담겼다. 집필에는 보조작가 등 12명의 작가가 동원됐다.

 삼성전자의 도전을 웅변하는 일화는 2001년 8월의 ‘자쿠로 회동’이다. 당시 일본의 낸드플래시 세계 최대 업체 도시바의 합작 제안을 받아들일지를 놓고 이 회장, 윤종용 부회장, 이윤우 반도체총괄 사장,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황창규 메모리사업부장 등이 도쿄의 자쿠로 식당에 모여 숙의했다. “조금만 더 하면 따라잡을 수 있다.” 최고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이 회장이 결단을 내렸다. 그는 “눈앞의 기름진 음식만 즐긴 뚱뚱해진 고양이는 쥐를 잡지 못한다”며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이후 시장이 축소돼 위기에 처했지만 삼성전자는 대만 PC업체들에 낸드플래시가 들어간 USB메모리를 만들어 팔아 보라는 제안을 했고, 대성공을 이뤘다. 이를 발판으로 2002년 도시바를 제치고 시장 1위에 올랐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드웨어(HW) 경쟁에 치중하던 90년대 초반 창의성 있는 소프트웨어(SW) 인재를 뽑기 위해 회사 인사팀이 발칵 뒤집혔던 일도 있다. 91년 러시아를 방문 중이던 이 회장은 컴퓨터사업부에 전화를 걸어 “컴퓨터 천재들, 특히 SW 인재들을 뽑아 오세요”라는 지시를 내렸다. 인사팀은 7개 대학 학생들이 모인 전국컴퓨터서클연합이란 모임을 찾아내 이들에게 1년간 활동할 공간을 마련해 줬다. 하지만 막상 직원으로 채용하려고 했더니 대부분 형편없는 학점이 발목을 잡았다. 면접만으로 다시 채용 절차를 밟았지만 역시 점수가 저조해 모든 심사를 백지화하고 순수한 컴퓨터 실력만 갖고 채용을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창의적인 인재를 찾겠다는 집념이 제도 파괴까지 불러왔다”고 회고했다.

미국 시장을 뚫기 위해 현지 직원을 포함한 전 직원이 90일 동안 매주 토요일에도 출근하도록 했던 일화도 있다. 미국 휴대전화 시장에서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내린 극약 처방이었다. 주 5일 근무가 일상인 현지 직원들의 반발도 심했다. 하지만 손대일 당시 법인장은 “따라올 수 없는 사람은 어쩔 수 없다”고 공언했다. 토요일마다 전원이 모여 점유율 회복 전략을 의논했다. 힘을 합치자 판매량이 늘었다. 2003년 5500만 대였던 것이 2005년에는 1억200만 대를 팔았다. 매출도 세 배가량 뛰어올랐다.

 이 밖에 2005년 낸드플래시 시장이 공급과잉에 빠지자 MP3플레이어를 제조하던 애플을 찾아간 일화도 들어 있다. 당시 “얇고 가벼운 제품을 만들려면 하드디스크 대신 플래시 메모리를 써야 한다”고 설득해 결과적으로 히트작 ‘아이팟 나노’를 탄생시켰다.

 ◆경영철학=사사의 발간사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감회와 향후 비전이 담겼다. 이 회장은 ‘산업의 주권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미국에서 시작한 반도체가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왔고 머지않아 다른 나라로 가게 될 것이다. 삼성전자의 도전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는 삼성전자의 역사를 ‘국가 전략산업의 역사이자 세계 전자산업의 판도를 바꾼 드라마’라고 술회했다.

한편으로는 숨가쁘게 재편되는 경쟁구도 속에서 경계심을 늦추지 말라고 임직원들에게 주문했다. ‘자만과 안일에 빠지면 순식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 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회장의 이런 생각은 2년 가까운 공백을 깨고 3월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 내놓은 일성과 맥을 같이한다. 당시 그는 ‘지금이 진짜 위기다.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제품들이 사라질 수 있다’고 임직원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문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