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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터뷰] 조두순 피해아동 나영이 치료…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


 

"'범인 잡아라'보다도… 제3, 제4의 피해·가해자 막는게 중요"
나영이 정신적으론 거의 극복 배변백 제거하면 신체도 회복
화학적 거세 원칙은 찬성…임상실험·평가체계 갖춰야
피해자 인권보호 측면서 수사기관 별로 변한게 없어 행정가들 현장에 와봤으면...

최근 빈발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性)범죄는 아침 등굣길, 대낮 집 안, 평일 교정, 휴일 놀이터조차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줬다. 조두순(58)·김길태(33)·김수철(44) 같은 악마적 심성의 성범죄 전과자뿐 아니라, 50대 초등학교 교사나 70대 노인마저도 몹쓸 짓을 한 가해자에 들었고 남아(男兒)도 성 추행 피해자에 예외가 아니었다.

신의진(申宜眞·46) 연세대 의대 교수(소아정신과 전문의)는 "아동 성폭력, 가정해체, 도박·인터넷 중독, 자살은 최근 사회적 병리를 이루는 한묶음으로 볼 수 있다"면서 "문제해결을 위해 행정과 현장전문가가 제발 좀 함께 했으면 한다"고 했다. 2008년 12월 발생한 조두순 사건 피해아동(가명 '나영'이로 알려져 있다)을 치료해 온 신 교수를 11일 만나, 아동 성폭력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일련의 극악 범죄 때문에 인터뷰 대상자로 자주 등장합니다.

"글쎄 말이에요. 하지만 혼자 떠들어봐야 안 바뀌니까, 여론이 올바로 전파된다면 좋은 일이죠. 저는 이런 (어지러운) 세상이 올 줄 알았어요. 성폭력을 행하는 이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정신적으로 건강치 않고 소외받고 방치되는 이들을 어릴 적부터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성 범죄자나 알코올·도박·인터넷 중독자로 되게 마련이에요."

―'나영'이는 요즘 어떻습니까?

"정신적으론 거의 극복했고, 다음달 초 배변 백(bag) 제거수술을 받으면 신체적으로도 원상태로 돌아온다고 봐요."



―성폭력 피해아동에 대한 완벽한 치유가 가능한가요?

"조기 치료하면 완전 치유할 수 있는데, 제대로 안 해서 문제죠. 나영이는 치료기간이 1년쯤 걸렸어요. 문제는 배보다 배꼽이 큰, 즉 성폭력 이전부터 정서적 학대를 받은 경우예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는 이런 경우 더 심하고 오래 가죠. 예컨대 아버지 알코올 중독이 더 먼저인 경우죠."

―치료사례 중 조두순 사건이 가장 극단적이겠죠?

"1년에 2~3건 정도 비슷한 일이 있어요. 용산 H양 사건은 선례였죠. 그 범인은 사건 한달 전 다른 아이를 성추행해 접해 봤어요. 범행수법이 나쁘고 반성하지도 않아 '함부로 풀어줘선 안 된다'고 검찰에 탄원서를 냈어요. 그런데 그 착한 H양이 무참히 살해됐고, '좀 더 잘 대처했더라면…' 하는 자책감이 들어 나영이 사건 때 '끝장을 보겠다'고 독하게 나섰죠."

―조두순 사건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줬습니까?

"많은 국민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됐고 모금운동을 통해 가족에게 경제적으로는 도움을 줬어요. '성폭력은 남의 일'이란 시각도 바뀌었죠. 하지만 피해자 인권보호 측면에서 정부기관은 별로 변한 게 없어요. 조두순 사건 때 검찰이 피해아동에게 2차(정신적) 피해를 줬고, 이번 영등포 사건(초등학생이 학교운동장에서 외부인에게 납치·성폭행 당한 사건) 때는 경찰이 수사를 우선해 피해아동이 응급수술을 제때 못 받았어요."

―조두순 사건에 대한 앙금이 있나요?

"이명박 대통령과 나영이 아버지의 만남을 꼭 주선하고 싶어요. 윗사람으로 올라갈수록 '범인 잡아라, 형량 높여라' 같은 원론적 얘기만 하니까요. 중요한 건 제3·제4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막는 거죠. 영등포 사건의 경우 피해자와 가족이 집에 다시 돌아가는 것 자체를 두려워 하지만 전세금 때문에 어쩌지를 못해요. 그게 2차 피해일 수 있거든요."

―상담·치료자로서 어떤 역할이 중요합니까?

"아동 성 피해의 경우 부모 치료가 먼저고 그다음이 아이입니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사건을 재해석하는데, 대개 아빠는 주먹으로 해결하려 하고 엄마는 매일 악몽을 꾸고 울지요."

―제안한 정책이 많이 수용되던가요?

"행정가들이 한번이라도 현장에 나와 실정을 봤으면 해요. 이런 쓴소리 한다고 고치기는커녕 불쾌해하고 조사도 안 할 바에 공무원이 어떻게 국민 세금으로 녹을 먹는지…."

―피해자의 흐느낌을 접하면서 자신의 감정선은 어떻게 다스립니까?

"초기엔 환자 내보낸 뒤 눈물깨나 흘렸죠. 감정이입되게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전문가는 교감은 하되 거리를 둬야 해요. 그게 한 3년쯤 걸렸어요."

―가해자로부터 협박받진 않나요?

"괴롭히는 사람들이 많지만 대처하는 법을 압니다. 제 주변에서 2~3년씩 맴도는 이들도 있었죠. 국민의식 덕분에, 아니면 법이 엄격해졌다고 생각해선지 요즘은 덜해요."

―1998년 어린이집 원장 남편으로부터 성폭행 당한 피해아동을 상담한 것을 계기로 성폭력 피해아동에 관심을 뒀죠.

"그 사건은 시시콜콜 다 기억해요. 피해 아동(당시 5세) 어머니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상고했지만 대법원에서 패소했어요. 아이 진술 하나밖에 없었다는 이유에서요. 하지만 그 모성은 굴하지 않았고 해바라기아동센터를 만드는 단초를 줬죠."

―쉽지 않은 길을 택한 데 후회는 없었나요?

"후회는 없지만 힘이 들었어요. 대학병원 의사로 두 아이를 길러야 했기에 30대엔 하루 네시간도 못잤어요. 하지만 제가 손 떼면 성폭행 피해자에게 진단서 하나 떼주기 힘든 상황이었요. '사람이 사람 구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는 생각에 버텼죠. 미국 연수 때 피해자 진술 받는 기초부터 훈련받았어요. 미국에선 그런 트레이닝 비용이 국가에서 나와요. 사회적 비용이라는 의식 때문이죠."

―최근 아동 대상 성범죄가 잦은 이유는 뭘까요?

"국가적으로 정신건강이 나쁘고 사회문화적인 스트레스가 많다는 거죠.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제도도 문제고요. 스트레스를 받거나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시스템이 취약해 자살과 범죄가 증가했습니다. 학교폭력이 생겨도 가해자가 더 떳떳하니, 성폭력은 오죽하겠습니까. 이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게 아니라 사람의 행복을 늘려주는 고급화된 복지 정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법무부가 범죄 피해자 구제기금 관리를 전담할 게 아니라, 여러 부서가 일을 분담해 전문가 조언을 듣고 전문인력을 키워야 합니다."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가 논란입니다.

"원칙엔 찬성하지만, 임상실험을 우선 해야 합니다. 과학적 방법론과 평가체계가 갖춰져야지, 아니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성범죄자에게 일정 기준만 되면 전자발찌를 채우듯이 밀어붙이면 안 됩니다. 화학적 거세를 하려면 정신과 의사가 한달에 한번 이상 범인을 만나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를 모니터링하고 인지행동 치료를 하면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어요."

―수사·재판 과정에서의 2차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죠?

"정신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법조·경찰뿐 아니라 언론·의료인·학교가 간명한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어요. 언론 보도도 지나치게 자세히 묘사하지 않아야 합니다."

―소아·청소년 정신과를 전공한 이유는 뭔가요?

"아이들 때문이었어요.(그녀는 고3·중3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레지던트 1년차 때 출산해, 일하는 엄마로서 아이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거든요."

―큰 아이가 틱장애(무의식중에 얼굴 등 신체 일부를 빠르고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증상)를 가졌다고 고백했죠?

"오늘 나오면서 아이가 그 얘기해도 좋다고 허락했어요.(웃음) 틱 장애는 15세 지나면 대부분 없어지지만, 소아정신과 의사라는 게 큰 행운이었죠."

―워킹 맘(working mom)으로서 가슴 시린 부분이 있었겠군요.

"모성이나 아이를 좋아하는 여성에게, 결혼 안 하거나 애를 안 낳도록 막다른 선택을 줘선 안됩니다. 일도 하면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도록 우리 사회문화가 바뀌었으면 합니다."

―조기교육에 대해 비판적인 책을 써 왔죠?

"현 조기교육은 엄마들 취미생활이에요. 교육은 뇌발달과 맞아야 하는데, 생후 12개월 아이한테 한글을 가르치는 건 부적절한 자극이에요. 기는 아이한테 뛰라는 격이죠. 저도 그런 우를 범한 적이 있어요."

―'길을 묻는 어른에게 친절히 응대하라' 같은 가르침은 폐기해야 할까요? 일부 남성들은 잠재적 성적 가해자로 보여져 불편하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에게 자기보호 기술을 가르쳐야겠죠. 제 아들들을 포함해 남성들이 건강하게 이성을 사귀고 성적인 행복을 누리길, 여성과 잘 사귀고 세련되게 농담할 줄 알기를 진심으로 바라고요."

―만약 아동 성폭력 피해가 일어났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지나치게 캐묻지 말아야 합니다. 의심이 가면 전문가를 먼저 만나게 하는 게 낫습니다. 수사기관이 조사과정에서 아이 인권보호를 위해 노력하는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신 교수는 20년, 30년 후 상상 속의 자아상에 대해 "방치되거나 학대받는 아이들을 돕는 재단에서 일할 것 같다"고 했다.


■ 신의진 교수는

연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부교수 겸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의사로 재직 중이다. 1964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 혜화여고와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98년 미국 콜로라도대학 소아정신과에서 아동학대 관련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2004년 서울 해바라기아동센터(성폭력 피해아동 치료 전담센터) 설립을 주도해 지난해까지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2008년 12월 발생한 '조두순 사건' 피해아동의 주치의로 활동한 것을 비롯해 10여년간 성폭력 피해 어린이와 가족 1000여명을 상담·치료한 공로로 지난 7일 서울특별시 여성상을, 지난해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현명한 부모는 자녀를 느리게 키운다'(걷는나무) '현명한 부모는 자신의 행복을 먼저 선택한다'(갤리온) 등의 저서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신의진 교수 "진료실 들어서던 나영이 눈빛, 잊을 수 없어"



2008년 12월 발생한 조두순 사건의 피해아동치료를 맡아 온 신의진 교수와 아동 성폭력 문제에 대해 인터뷰를 가졌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