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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라이터'를 만나다] [6] 솔직한 육아 경험 써내 큰인기 아이교육서(書) 중(中)·일(日)에 수출까지

 

 

입력 : 2009.11.16 03:13

소아정신과 전문의 신의진
"요즘 엄마와 사이가 나빠 병원에 오는 아이 많아요"

신의진 교수는“아이들은 다 다르기 때문에 한 아이의 성공 사례를 내세워‘이렇게 하면 된다’식의 교육서가 가장 나쁘다”고 말했다./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1990년대 말 연세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45)의 진료실에는 '영어비디오 증후군'(장시간 TV 시청으로 인한 발달장애로 외부 자극에 반응하지 않고 말도 늦다)을 보이는 어린이들이 몰려들었다. 그중에는 영어 단어 시험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또래에 대한 폭력으로 푸는 세살배기도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사회 전반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했고, '영어만이 살 길'이라는 분위기 때문에 영어 비디오·영어 유치원 시장이 확 커버렸지요. 남을 누르고 빨리 가려는 어른들의 조급함이 아이들 마음에 병을 심어 놓은 겁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에요."

신 교수는 자신의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현명한 부모들은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2000년)를 펴냈다. '욕먹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쓴 조기교육 비판서'라는 부제(副題)를 단 이 책은 나오자마자 교육서 분야 1위에 오르며 20만부가 팔려나갔다. 그가 이어서 펴낸 《아이의 인생은 초등학교에 달려 있다》(2004년), 《현명한 부모들이 꼭 알아야 할 대화법》(2005년), 《신의진의 아이 심리백과》(2007년) 등은 모두 5만~10만부가 판매돼 '출간하면 5만부'라는 평을 듣게 됐다. 신 교수의 책은 일본·중국으로도 수출됐다.

"아이 마음에 병을 만들기 전에 부모들이 미리 대비하고 예방하라"는 메시지가 부모들의 공감을 얻은 데는 신 교수 자신의 아이 키우기 경험이 컸다. 그는 가장 힘들다는 레지던트 1년차 때 큰아이를 임신했다. "아무 준비 없이 가졌으니 혼란이 대단했지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퉁퉁 부은 다리로 병원을 돌아다니면, 뒤에서 남자 동료들이 '저기 코끼리 지나간다'며 키득거렸어요. 오죽하면 '아이를 없앨까'라는 벌 받을 생각까지 했겠습니까."

그렇게 낳은 아이는 자라면서 걸핏하면 짜증을 부리고, 옷을 찢고, 물건을 집어던졌다. 이유 없이 신체 일부를 반복적으로 심하게 움직이는 틱 장애와 강박증도 심했다.

신 교수는 소아정신 분야의 책을 뒤지기 시작했고, 결국 소아정신과 전문의의 길을 택했다. 수업 도중 갑자기 애국가를 부르던 아이는 신 교수가 정성을 쏟은 결과 지금은 반듯한 고등학생이 됐다.

'육아보다 자신의 일을 우선시하는 남편(소아과 의사)이 미워 이혼까지 생각했었다' '소리 지르고 떼쓰는 아이에게 화가 나서 나도 함께 고함을 쳤다'…. 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같은 처지에서 백배 공감할만한 신 교수의 솔직한 '자기 얘기'였다.

신 교수는 요즘 '조두순 사건' 피해자인 8세 나영이(가명) 주치의로 바쁘다. 10년간 성폭행 피해 아동을 1000명 이상 진료해 온 그도 처음 진료실에 들어서던 나영이의 눈빛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성폭력 주무부처인 여성부와 검찰의 안이한 일 처리를 비판하고, 평생 대변 백을 차고 다녀야 하는 아이를 위해 모금활동을 벌여 1억5000만원을 모았다.

신의진 교수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회성'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이다. "요즘 한국인들은 상대와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경쟁사회에서 각각 고립돼 '인티머시'(intimacy·친밀감)가 잘 형성되지 못하죠." 그녀의 눈에는 성범죄가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어른들 틈에서 크는 아이들은 더 큰 문제다. "예전처럼 온 동네가 함께 애들을 키우는 분위기도 아니고, 엄마들도 '관계'를 돈으로 때우려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엄마와 사이가 나빠 병원에 오는 아이들이 많아요. 지금이라도 누군가 나서서 무엇이 문제인지 얘기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