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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라운지] 국내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위


 

기사입력 2009-02-06 18:37 |최종수정2009-02-06 22:06 


“연쇄살인범 집 가보니 내 사진 있더군요”

프로파일러는 연쇄살인범과 심리전을 진두지휘하는 경찰 과학수사의 중추다. 범인을 공략하는 무기는 위압적인 태도나 감성적인 호소가 아닌 '데이터'라는 객관적 수치다. 프로파일러는 범인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서도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를 찾아낸다. 연쇄살인범 강호순 검거에도 프로파일러 역할이 컸다.

지난 3일과 4일 경찰청 정보지원계 소속 국내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44) 경위를 어렵게 만나 강호순을 상대로 1대 1 심문을 하면서 자백을 이끌어낸 과정을 들었다.

◇"나는 안 잡힐 줄 알았다"=2006년 12월14일 오전 3시55분 배모(45·여)씨는 경기도 군포시 금정역 먹자골목에서 친구와 휴대전화 통화를 한 뒤 깜쪽같이 사라졌다. 10일 뒤인 24일에는 수원시 화서동에서 박모(37·여)씨, 2007년 1월3일 회사원 박모(52·여)씨, 같은 달 6일과 7일 김모(37·여)씨와 여대생 연모(20)씨가 실종됐다. 급기야 지난해 11월 주부 김모(48)씨, 12월 여대생 안모(21)씨가 사라지자 경찰은 연쇄살인을 의심했다.

현장에 급파된 권 경위는 실종 장소와 휴대전화가 꺼진 지역을 숱하게 오갔다. 범행 동기와 실종 장소의 지리적 조건을 분석했다. 집에 누워 있어도 머릿속에 범행 동선이 환하게 그려질 정도였다.

권 경위는 다른 프로파일러와 2개월 동안 토론하고 자료를 축적했다. 그리고 '30대 후반에 호감형 얼굴, 개인 승용차를 이용한 범행, 공범은 없고 안산 지역 거주자'라는 프로파일을 구축했다. 연쇄살인범 강호순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프로파일이다. 강호순을 만나기 전에 이미 권 경위 머릿속에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지난달 29일 권 경위는 그렇게 찾아다녔던 강호순을 처음 만났다. 강은 "나는 안 잡힐 줄 알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1대 1 면담 전 심문실 밖에서 모니터링을 할 때도 강은 '내가 자백을 안하면 너희가 어떻게 할래?'라는 식으로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피말리는 심리 싸움이 시작됐다. 강과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권 경위는 공감대 형성에 공을 들였다. 권 경위는 "강에게 피곤하냐고 물으니 웃으면서 당신도 피곤하냐고 되물었다. 유달리 자존심이 강한 강에게는 최대한 부드러운 태도로 대화했다"고 전했다.

강은 불리한 질문에는 말을 끊고 물을 마셨다. 다만 여성 편력 이야기가 나오면 적극적으로 변했다. 여자에게 인기가 많다는 얘기를 했다.

추가 범행을 부인하며 버티던 강은 자녀 얘기를 꺼내자 흔들렸다. 자녀 문제가 강에게 '에멘탈 치즈의 구멍'이었던 것이다. 에멘탈 치즈는 썰기 편하게 물레방아 바퀴 모양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다. 범죄심리학에서는 에멘탈 치즈에 뚫린 구멍 때문에 치즈가 잘 썰리는 것에 빗대 범죄자 심리를 파고들어갈 수 있는 약점을 에멘탈 효과라고 부른다.

권 경위는 이때부터 자녀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했다. "자백을 하고 참회하는 아버지를 보는 것과 그것을 부인하는 아버지 중 애들이 보기엔 어떤 것이 낫겠냐." 이 한마디에 결국 강은 무너졌다.

◇"강은 자기통제력 강해"=권 경위는 강호순이 이제껏 만난 연쇄살인범 중 가장 까다로웠다고 전했다. "강은 유영철, 정남규와 달리 말수가 없고 자기 감정 통제가 능숙했다. 피해자가 자기 영역 안으로 완벽하게 들어올 때까지 분노 표출을 절대 안할 정도로 통제력이 강했다. 지능적이고 완전범죄를 추구했다. 질문을 던지면 의도를 미리 꿰뚫고 네가 나를 분석하려드냐는 식으로 대처했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강도 심문 과정에서 눈물을 흘렸다. 권 경위는 "그건 악어의 눈물이었다. 참회의 눈물이 아니라 도망갈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해서 흘리는 눈물이었다"고 말했다.

권 경위는 구체적 면담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연쇄살인범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수사 기법이 노출되면 프로파일링에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는 "정남규를 잡고 나서 그 집에 가보니 내 사진을 스크랩해놨더라"며 "요즘에는 범죄자들도 자신이 만날 경찰을 미리 공부한다"고 토로했다. 또 "프로파일러가 범인을 보고 단박에 알아맞히는 그런 영화 같은 일은 없다. 프로파일링은 직감이 아니라 과학"이라고 강조했다.

소탈한 아저씨 인상의 그는 "강이 저지른 범죄는 끔찍하지만 그의 자녀들과 연결해서는 안된다. 연쇄살인 문제는 사회적 병리 현상을 동반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말을 맺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